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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바.세 (1)

  • 작성자 사진: veacollege
    veacollege
  • 2025년 12월 10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1월 14일



베아오페라음악예술원 '클래식 바로 세우기' 에세이

'성악가라면 왜 마이크와 MR에서 멀어져야 하는가'

 

벨칸토가 지향하는 ‘극장을 울리는 살아있는 소리’의 본질

벨칸토는 단순한 발성법이 아니다. 숨(Sul fiato)이 소리를 지탱하고, 그 소리가 공명을 통해 구조를 이루어 극장 전체를 하나의 울림통처럼 울리는 예술적 기술이다. 벨칸토의 목표는 “크게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공간과 반응하며 살아 움직이는 소리”다. 하지만 마이크와 MR은 이 본질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린다. 그 두 가지는 성악가에게 편함을 주는 대신, 성악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리게 한다.

 

1. 벨칸토는 ‘극장을 울리는 구조’이며, 마이크는 그 구조를 파괴한다.

벨칸토 발성에서 소리가 전달되는 방식은 단순한 볼륨의 문제가 아니다. 호흡 위에 소리를 실어 보내는 Sul fiato는 공명, 압력, 균형이 정확하게 배치된 구조적 소리를 만든다. 이 구조가 공간을 타고 움직이며 천장·벽·좌석을 따라 확장될 때, 극장은 하나의 거대한 악기가 된다. 마이크는 이 과정 전체를 건너뛴다. 소리가 공간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대신 소리를 “뿌려주는 방식”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 순간 성악가는 공간을 울리는 공명의 위치 호흡 압력의 축 음향적 아치 구조 울림의 자연스러운 이동이 모든 연구를 중단하게 된다. 벨칸토의 목표는 극장 자체를 소리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마이크는 이 목표를 근본부터 흔든다.

 

2. 마이크는 성악가에게 ‘호흡을 쓰지 않을 자유’를 주고, 그 자유는 치명적이다.

마이크가 가까이 있으면 작은 소리도 다 들린다. 그때부터 성악가는 소리를 지탱하는 호흡 압력 없이도 노래할 수 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파괴적 변화가 일어난다. 소리는 성대 주변에서만 형성되고, 공명 구조는 낮아지고 납작해지고, 숨의 길은 짧아지고, 몸 전체가 악기로 기능하지 않게 된다. 벨칸토에서 ‘힘을 빼라’는 말은 호흡의 구조가 이미 세워진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다. 마이크는 이 전제 조건을 지워버린다. 그 결과 성악가는 "자신의 호흡 대신 기계를 믿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벨칸토에 가장 치명적인 순간이다.

 

3. MR은 살아있는 소리를 지워버린다.

'기계 속에서 가공된 소리와 성악의 충돌'

MR은 단순히 템포와 박자를 고정시키는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MR 자체가 살아있는 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MR은 숨으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압력과 공명의 흐름이 없으며, 공간과 호흡하지 않고, 청중과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그저 기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기계로 재생되는 소리다. 반면 성악가의 소리는 지금 이 순간 들이마신 숨에서 태어나고, 그 숨의 압력이 공명을 지탱하며,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반응하며 성장한다. 이 “살아있는 소리”와 MR이라는 “죽어있는 기계 사운드”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다. MR과 함께 노래하는 순간 성악가는 호흡으로 음악을 이끄는 역할, 프레이즈를 조형하는 자유, 공간을 울리는 구조적 표현 소리 자체의 생명력, 이 모든 것을 잃는다. 성악의 본질은 “지금 여기에서 살아 움직이는 소리”다. MR은 그 본질을 제거한다.

 

4. 성악은 결국 ‘극장’이라는 거대한 악기와 함께 완성된다.

성악이라는 장르는 애초에 극장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커지고 극장이 확장될수록, 성악가는 더 강력한 호흡 구조와 더 정교한 공명을 필요로 했다. 바로 그 과정에서 벨칸토 발성이 완성되었다. 성악가는 극장이라는 공간과 대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벨칸토의 진짜 울림을 체험하고, 그 울림을 몸으로 기억하며 성장할 수 있다.

마이크는 이 대화를 중단시킨다. 극장을 울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악가는 결국 극장과 단절된 가수가 되고, 극장의 전제를 잃은 순간 성악이라는 장르도 힘을 잃는다. 벨칸토를 지향한다면, 마이크와 MR은 반드시 멀어져야 한다. 벨칸토는 숨의 예술이고, 구조의 예술이고, 공간의 예술이고, 살아있는 소리의 예술이다.

 

[결론]

마이크는 숨 대신 기계를 사용하게 만들고, 구조적 소리를 만들 필요를 없애고, 극장과의 상호작용을 제거한다.

MR은 살아있는 소리를 ‘죽은 기계 사운드’와 섞게 하고, 호흡이 음악을 이끄는 자유를 빼앗고, 성악가를 재생 장치에 종속시킨다. 성악가는 결국 기계를 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극장을 울리는 사람이다. 그 진실을 잊지 않는다면, 성악가가 마이크와 MR에서 멀어져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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