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바.세 (2)
- veacollege
- 2일 전
- 2분 분량
베아오페라음악예술원 '클래식 바로 세우기' 2.
열린 음악과 닫힌 음악, 우리가 헷갈리고 있는 것
MR과 마이크가 만든 ‘음악 소비’의 시대
우리는 흔히 음악을 열린 음악과 닫힌 음악으로 나눈다.
그리고 대부분 이렇게 이해한다.
· 누구나 쉽게, 무료로, 어디서나 들을 수 있으면 열린 음악
· 티켓을 사고 공연장에 들어가야 들을 수 있으면 닫힌 음악
이 기준에 따르면 사람들이 말하는 ‘열린 음악회’,
즉 MR과 마이크를 사용해 광장이나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은
열린 음악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러나 이 판단은 음악을 어떻게 듣는가가 아니라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틀어 주는가만을 기준으로 삼는다.
MR과 마이크는 음악을 ‘듣게’ 하지 않고 ‘소비하게’ 만든다
MR과 마이크는 음악을 언제나 같은 크기, 같은 질감으로 전달한다. 공간의 울림이나 연주자의 상태와 상관없이 소리는 균등하게 쏟아진다.
이 방식은 친절하다.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다. 소리는 자동으로 도착한다.
그래서 이런 공연에서 사람들은 음악을 경험한다기보다 소비한다.
음악은 배경이 되고, 사람들은 스쳐 지나가며 듣거나 필요한 만큼만 취한다.
이때 음악은 듣는 사람의 감각을 열기보다 소비 가능한 콘텐츠로 기능한다.
형식은 열려 있지만, 경험은 닫혀 있는 음악이다.
공연장은 닫혀 있지만, 음악은 열린다
공연장은 형식적으로 분명 닫혀 있다. 티켓을 구매해야 하고,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만 들어갈 수 있으며,
문도 실제로 닫힌다.
그러나 공연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마이크와 MR을 사용하지 않는 자연 음향의 음악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청중에게 다가온다.
이 음악은 소리를 키워 전달하지 않는다. 대신 소리가 공간 안에서 자라도록 만든다. 연주자의 숨에서 시작된 소리는 무대 위에서 바로 끝나지 않고 천장, 벽, 객석을 타고 이동하며 공연장 전체를 하나의 울림통으로 만든다.
마이크가 없는 음악은 청중에게 자동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귀를 기울여야 하고, 집중해야 하며, 소리의 방향과 거리를 스스로 느껴야 한다.
그 순간 청중은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이 완성되는 과정에 참여하는 존재가 된다.
자연의 울림 속에서 음악은 매번 같은 결과로 재생되지 않는다.
연주자의 컨디션, 공간의 상태, 청중의 집중도에 따라 소리는 매 순간 다르게 반응한다.
그래서 이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만 존재하는 경험이 된다.
이런 이유로 공연장은 닫혀 있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자연 음향의 음악은 들을수록 더 많은 감각을 열고,
경험할수록 더 깊어지는 열린 음악이 된다.
‘열린 음악회’라는 말이 만들어낸 역설
그래서 역설이 생긴다.
사람들이 말하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음악회”는 실제로는 음악을 소비하게 만드는 구조이고,
“닫힌 공간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회”는 음악을 경험하게 만드는 구조다.
결국 열림과 닫힘은 문이나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음악이 청중에게 소비를 요구하는가, 참여를 요구하는가의 문제다.
결론
MR과 마이크는 음악의 접근성을 넓혔을지 모르지만,
동시에 음악을 쉽게 소비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음악이 청중에게 귀를 기울일 이유를 덜 요구하게 만들었다.
아무런 집중을 요구하지 않는 음악은 경험으로 남기보다 배경처럼 스쳐 지나가기 쉽다.
반대로 집중을 요구하는 음악은 듣는 시간만큼 경험의 밀도를 쌓아 간다.
집중을 요구하는 음악은 느리지만 오래 남는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이 음악은 많은 사람에게 들렸는가가 아니라, 누군가의 귀를 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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